영화1987, '궁금한 남영동'
영화1987, '궁금한 남영동'
  • 도농라이프타임즈
  • 승인 2018.01.11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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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대공분실 실사

영화 1987은 전두환정권인 1987년 1월에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사망한 사건을 다룬 영화다.

당연스럽게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남영동'에 대한 언급과 장면이 많이 나타난다.
그러한 연출들은 당시대에 '남영동'이 민주화 운동 인사의 고문장소로 얼마나 악명이 높았는지 보여준다.

남영동 대공분실에 대한 사건을 다룬 또 다른 영화가 있다. 
정치인 김근태가 민주화 운동 시절 남영동으로 끌려가 22일 동안 고문 받은 사건을 다룬 '남영동 1985'이다.

이 영화는 고문실에 갇혀있는 동안 받았던 고문을 중점으로 진행되며 고문기술자라는 사람까지 등장했던 우리나라의 암울했던 시기를 낱낱이 밝히고 있다. 이후 고문을 받은 김근태는 파킨슨병, 뇌정맥 혈정증, 패혈증까지 앓게 되며 평생을 그 후유증으로 고통 받았다.

이렇게 극악무도한 일이 행해졌던 '남영동 대공분실', 그곳은 어디인가.

남영동은 서울 용산구 갈월동에 위치해 있지만 바로 옆에 남영역이 있어 남영동 대공분실로 불리게 됐다. 본래 간첩을 색출하고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사람을 심문할 용도로 지어졌지만, 군부정권에 반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연행해 고문하는 곳으로 변질되었다. 

이 건물의 설계 또한 악명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계단은 나선형의 철제 계단으로 되어있고, 계단의 옆면은 벽으로 막혀있다. 이는 두 눈이 가려진 채 끌려가는 대상자들로 하여금 방향감각과 높이(층수)감각을 상실하게 한다.

계단의 비상구나 엘리베이터로 통하는 문도 다른 취조실들과 동일한 모양과 간격으로 사람들이 쉽게 탈출할 수 없게 만들었다.

또, 방마다 문을 엇갈리게 설치해 완벽한 시각적 차단을 이루었다. 방 안에는 흡음판을 설치해 고문 소리가 외부로 세어나가지 않게 했고, 유리창을 깨도 탈출할 수 없게 좁은 창문을 설치했다. 이외에도 고문을 위한 설계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렇게 치밀한 설계를 한 사람은 올림픽경기장, 한국일보사옥, 경동교회 등을 건축한 건축가 김수근이다.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 작품을 설계한 사람으로 한국 건축의 수준을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 사람이다. 동시에 남영동 대공분실을 건축하며 "악마를 위해 재능을 펼친" 사람이라는 어두운 평도 받는다.

그의 제자들은 고문용 시설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설계한 것이라 변호하지만 김수근이 내무부장관 김치열의 발주를 받아 설계함으로써 그와 정권이 합작한 결과물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현재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은 과거 경찰이 행했던 행태를 반성하고자 하는 의도로 경찰 인권센터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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