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빌려간 사람이 사망해도 돈 받아요'…판사도 모르는 이 제도?
'돈 빌려간 사람이 사망해도 돈 받아요'…판사도 모르는 이 제도?
  • 도농라이프타임즈
  • 승인 2021.09.1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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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이 있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아들 A씨는 가정법원에서 아버지의 재산을 '한정승인'(피상속인의 재산 한도 내에서 채무를 변제하는 조건으로 상속을 승인하는 것)을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채권자가 여러 명이었다.

한정승인 사실을 공고하고 빚을 갚기 위한 경매 절차까지 진행해야 했다. 또 A씨 마음대로 채무를 변제했다가는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도 있었다. 골머리를 앓던 A씨는 상속재산 파산제도를 이용하면 법원이 채무를 알아서 갚아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씨는 즉시 회생법원에 상속재산 파산을 신청했고, 골치 아픈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지인에게 돈을 빌려준 B씨. 그런데 지인이 갑자기 사망했다. 지인이 다른 사람에게 빌린 돈까지 합하면 총 1억8000만원의 채무가 있었는데, 재산이라고는 지인이 거주하던 8000만원 정도의 임대차 보증금이 전부였다.

B씨는 상속인인 지인의 자녀에게 연락을 했으나, 자녀들과 형제들은 차례로 상속을 포기하면서 돈을 받을 길이 막막해졌다. 골치를 앓고 있던 B씨는 서울회생법원의 상속재산 파산제도를 이용하면 돈을 쉽게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B씨는 지난해 10월 상속재산 파산을 신청했고 두 달 뒤 법원이 파산선고를 결정하면서 파산관재인을 선임했다. 파산관재인이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받아 지인의 채권자들에게 나눠줘 B씨는 빌려준 돈의 일부를 쉽게 돌려받을 수 있었다.

A씨와 B씨 모두 상속재산 파산제도를 이용해 상속 관련해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한 케이스다. 이처럼 상속재산 파산제를 이용하면 상속인이 남긴 빚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서 벗어날 수 있다. 법원이 상속재산을 대신 관리해주기 때문이다. 이 제도를 이용하면 법원이 파산관재인을 선임해 빚 변제를 대신 해준다.

B씨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상속재산 파산제는 상속인은 물론 채권자도 신청할 수 있다. 상속재산관리인과 유언집행자, 유언으로 피상속인의 재산을 일부 받는 사람도 가능하다.

상속인의 경우 채무를 잘못 변제해서 지게 될 손해배상 책임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채권자들도 돈을 돌려받으려고 후순위 상속인들을 찾아내 일일이 연락을 하지 않아도 된다.

상속재산 파산제도 업무를 담당했었던 한 판사는 "상속 관련해 한정승인을 받더라도 본인이 절차 진행에 관한 업무를 다 해야 하는데 반해, 상속제산제도는 법원에서 절차를 도와주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제도를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 제도 이용률은 극히 저조하다.

서울회생법원과 서울가정법원이 지난 2017년 제도 활성화를 위해 가정법원에서 한정승인을 받은 상속인에게 안내문을 제공하고, 서울회생법원에서 운영하는 '뉴스타트 상담센터'에서 전문적 상담을 제공하는 등 협업을 강화해 이후 큰폭으로 이용 실적이 늘었지만 아직은 미미한 상태다.

회생법원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상속재산파산 접수 건수는 각각 5건과 9건으로 한 자리수였다. 가정법원과의 협업을 시작한 2017년에는 75건, 2018년 192건으로 크게 늘어났지만 2019년에 다시 145건 2020년에는 173건으로 제자리 걸음 수준에 머물고 있다.

반면 가정법원의 한정승인을 청구하는 경우는 매년 수천 건에 이른다. 한정승인의 경우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가정법원에 상속포기 또는 한정승인 신청은 올해 매달 550~750건이 접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 계산을 하면 1년 단위로 한해 3300건 정도의 한정승인 신청이 들어오는 것으로 보인다.

상속받을 재산이 없는 경우에도 한정승인을 받은 경우가 있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한정승인 대비 상속재산 파산제를 이용하는 사람이 극히 적은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이 상속재산 파산제도의 이용률이 저조한 것은 일반인은 물론 법조인들에게도 낯선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1962년 파산법 시절부터 도입됐다. 60년 가까이 된 제도지만, 변호사들에게도 낯설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은 상속재산관리인, 유언집행자, 한정승인을 받은 상속인이 상속재산을 상속채권자와 유증을 받은 자에 대한 채무를 완전히 갚을 수 없는 것을 발견할 때에는 지체 없이 파산신청을 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강제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 사문화됐다.

한 부장판사는 "판사들조차도 상속재산 파산제도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며 "제도 자체를 모르니 일반인 입장에서는 신청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상속재산 파산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제도를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하는 것은 물론, 현재 가정법원과 회생법원으로 이원화 돼 있는 '상속채무 청산 제도'를 일원화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영주 법무법인 우리 변호사는 "현재는 법을 잘 모르는 상속인들이나 상속 채권자들 입장에서는 채무 초과 상태를 해결할 수 있는 옵션이 여러가지인 상황"이라며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권리관계나 절차들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채무가 초과하는 상황에서만 제3자인 파산관재인에 의해 처리할 것이 아니라, 상속 문제는 기본적으로 채무 초과이든 아니든 규정을 통일화해 파산관재인의 적극적 개입을 통해 공평하게 청산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한정승인은 가정법원 권한이고, 상속재산 파산은 회생법원 권한이라, 법원이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서로 간 협업을 강화하는 것"이라며 "상속채무 청산 제도 일원화는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